페니실린을 만들어낸 3명의 의학자들
과거 인류는 세균의 감염에 의하여 무수한 인명피해를 입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인하여 인류의 평균수명이 30년 가까이 늘어났는데요. 인류가 세균의 존재를 알아차린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1855년 포도주가 상하는 원인을 찾다가 세균의 존재를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계기로 세균이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되는 사실도 밝혀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니실린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고 하는데요.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발견한 3명의 의학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1881년 8월 6일 스코틀랜드 남부 에어셔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교육을 받으며 라우던 무어 학교와 다블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킬마르녹 학원에서 2년간 장학금을 받았으며 기초교육과정을 밟았습니다. 이후 런던에 거주하며 런던의 왕립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후 런던 대학교 의학부에서 장학금을 받았으며 런던 대학교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의학공부를 본격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906년 8월 6일에 의사면허를 취득하였으며 세인트 메리병원에서 엠로스 라이트와 예방접종 연구에 몰두 하였습니다. 1차세계 대전 발발후 플레밍은 영국군으로 입대하여 프랑스의 야전병원에서 의무장교로 근무했습니다. 이후 그곳에서 만난 간호사 사라 맥엘로이와 결혼하였습니다.
1918년 그는 세인트 메리병원으로 복직하여 교수가되었으며 이후 면역학, 세균학, 화학요법 분야에 많은 연구를 하였습니다. 플레밍은 1929년 곰팡이를 배양해 멸균능력을 지닌 물질을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중 연구실 바로 아래층에 곰팡이로 알레르기 백신을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었습니다. 이 실험실에서 사용한 곰팡이 중 하나가 운좋게 위층으로 날아왔으며 푸른 곰팡이로 알려진 페니실리움 노타툼은 연구실의 수많은 곳중에서도 포도상구균이 배양되던 플레밍의 배양용기에 앉게 되었습니다. 곰팡이로 오염된 부분에만 포도상구균이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플레밍은 결국 이 푸른곰팡이로 부터 페니실린을 분리하게 됩니다.
이후 플레밍은 페니실린이 포도상구균 뿐만 아니라 연쇄상구균, 뇌막염균, 임질균, 디프테리아균에 항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발견이 항생제 분야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1932년 플레밍은 페니실린에 관한 연구를 포기하게 됩니다. 페니실린의 연구는 이후 다른 연구자들에게 넘어가게 되었지만 플레밍은 1943년 왕립학회로 부터 회원으로 선출되며 1944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게 됩니다.
1945년에는 하워드 플로리, 에른스트 체인과 함께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합니다. 플레밍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하워드 플로리는 1898년 9월 24일 호주에서 태어난 병리학자입니다. 그는 애들레이드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에서 공부를 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192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옥스퍼드대학교의 교수로 일하며 염증과 모세관 임파구의 기능을 연구하였습니다. 1935년 체인과 함께 페니실린의 효력을 밝혀내게 됩니다. 함께 일한 언스트 체인은 1906년 6월 19일 독일에서 태어난 영국의 생화학자입니다. 이외에도 페니실린 항생제에 대한 의학자는 더 있는데요.
플레밍과 함께 논쟁의 중심에 있는 독일의 세균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역시 항생물질 개발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그는 세균의 세포벽에 잘 붙는 염료일수록 균을 더 잘 죽인다는 사설을 세웠는데요. 다양한 염료를 합성한 끝에 프론실이 연쇄상구균을 죽이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하루는 그의 여섯살 난 딸이 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일어났는데요 그는 열이나고 팔이 부어오르는 감염증상을 파악하고 그는 딸에게 자신이 만든 프론토실을 여러차례 먹였고 상처가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개발한지 6년뒤 최초 항생제 논쟁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도마크 역시 1947년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하였지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것은 도마크가 먼저 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나치 정부의 방해로 노벨상을 거부한다는 문서에 강제 서명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균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필요한 생명체이지만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생물에 대한 연구분야는 아직도 미개척된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래전 부터 세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인류의 수명은 50 언저리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 100세 시대를 논하는 시대가 올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많은 서양의 의학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페니실린이 아주 흔한 약이 되었지만 요즘 코로나 백신이 귀하게 사용되는 것 처럼 당시에는 아주 귀한 약이 었을 것입니다. 추측하건데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언젠가는 독감과 같은 흔한 질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코로나 뿐만아니라 이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이 생긴다면 인류는 또 페니실린과 같은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여야만 할것입니다. 우리 또한 항상 의학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훌륭한 학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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